공정현

〈걔 __했대〉

보드게임, 가변크기, 2024.

작업 설명

〈걔 __했대〉는 끊임없이 스크롤되는 이슈들을 자신의 SNS 계정에 업로드하여 점수를 획득하는 카드게임이다. 자신의 능력을 과장하거나 상대를 속여 이익을 얻는 것을 전략으로 하는 블러핑 게임 형식으로, 플레이어는 자신이 가진 카드를 진실 여부와 관계없이 “걔 __했대”라고 말하며 주목을 끈다. 게임이 진행될수록 플레이어들은 무분별하게 게임판에 놓여가는 이슈 더미를 근거로 진실에 가까워지거나 혼란에 빠지게 된다.

작업 기록

<예술가의 리서치>수업은 추상적인 맥락을 구체적으로 깎아내어 점 하나로 만드는 수업이다. 시작은 자신의 키워드로부터 출발하여 흥미로운 질문을 이끌어내야 하는데, 그 질문은 현재는 답이 나올 수 없고 작업을 통해서만 탐구할 수 있는, 또는 남들은 궁금해하지 않거나 뻔하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에게 특별한 질문이어야 한다. 문제는 나 자신으로부터 키워드를 찾으려 했지만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다음 수업 시간에 ‘궁금한 점이 떠오르지 않는다’, ‘작품에서 사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해버렸다. 그리고 스승은 “디자이너로서 또는 창작하는 사람으로서 나를 안 드러내겠다는 욕망은 이율을 배반하는 거나 마찬가지에요. 익명성이 없는 작업이라는 게 있을까요?”라고 대답했다. 당시 티모시 샬라메에 빠져 있던 나는 차라리 티모시 샬라메의 일상이 나의 어떤 키워드보다 흥미로울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는데, 정말로 궁금한 게 하나도 없을 리는 없지 않은가. 결국 내가 일상에서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과 궁금함을 해결하기 위해 찾아보았던 경로를 일주일간 기록했다.

3.20 한 개인에게 가장 사적이지 않은 정보는 무엇인가?
그렇게 적은 정보들을 보니 내가 일주일간 했던 일들이 다 드러났다. 스승은 꼭 자전적이거나 내밀한 이야기를 까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지만 나로부터 출발하는 그 지점이 불편했다. 작업에는 왜 개인적인 이야기가 들어가야 하는가. 개인적일수록 더 흥미로울까? 친한친구 스토리, 일상 블로그 또는브이로그, 연예인 사생활 가십거리를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기도 했다. 그렇다면 한 개인에게 가장 사적이지 않은 정보는 무엇일까.

4.3 공과사에서 균형을 찾을 수 있을까?
R은 내가 평소에 정보 해석에 피로를 느껴 피상적 태도를 취하고 개인의 영역과 공적인 영역을 구분 짓는 것 같다고 말했다. D는 나에게 기본값이나 계산된 정답같이 어떤 기준이나 선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여기서 ‘공과 사’라는 키워드를 발견하고 작업의 시작점으로 삼아보기로 했다.

4.23 게임
게임의 바탕이 되는 환경을 만들고 룰을 설정하는 것은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것과 같다. 게임에서 여러 선택을 마주하는 플레이어는 다른 플레이어의 행동을 유추하여 승리를 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게임에서는 승리가 당연한 목적이 되어 현실을 극대화한다.

4.24 바퀴벌레 포커
<바퀴벌레 포커>는 진실을 말할 때는 상대가 믿지 않기를 바라고, 거짓말을 할 때는 상대가 믿기를 바라기 때문에 어떤 선택을 하든 블러핑을 하게 되는 보드게임이다. 진실로 혹은 거짓으로도 블러핑을 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하나의 카드에 여러 다른 증언이 쌓일수록 카드를 받은 사람은 그 증언 중 어떤 것이 진실인지(실제로는 모두 거짓일 수도 있지만) 상상하게 된다는 점 등, 단순한 구조를 다채롭게 만드는 여러 장치가 이 게임을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

*블러핑: 허풍떤다, 또는 허세를 부린다 정도의 의미. 낮은 패를 가지고 있으면서 높은 패를 가진 양 허세를 부리며 레이즈를 하는 것을 뜻한다.

나는 이 게임에서 착안하여 올라왔다가 사라지는 이슈들, 아주 큰일 같다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잊히는 이슈들, 잊힌 줄 알았는데 또다시 소환되는 이슈들, 그것들이 떠오르기를 또는 가라앉기를 바라는 현실을 대입하여 게임 세계를 만들었다.

5.29
인간은 관심에 대한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 유혹에서 나와 당신은 완전히 자유롭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관심이라는 자원을 향하여 너도나도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다. 관심 획득을 위한 기본적인 조건은 가시성이다. 눈에 보여야 한다.1

6.5
강희는 내 작업에 대해 이렇게 적어주었다. SNS상에서 이슈들은 스크롤에 의해 화면 밖으로 빠져나가는 듯한 착시가 생겨나지만, 이 게임에서는 테이블 위에 정직하게 쌓여가기에, 단순한 SNS의 재현을 넘어서 끊임없는 정보의 재생산을 있는 그대로 목격하게 한다. 게임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이슈가 진실이든 거짓이든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속이거나 과시하거나 혹은 오직 주목을 끌기 위해 진정성과 무관하게 카드 더미를 쌓아올리는 모습이 환기하는 감각은 과연 무엇인가?


  1. VOSTOK 45호 〈시선에 관하여〉, 9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