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대한

〈표시장치 탐구〉

아두이노 보드, esp32에 OLED, LCD, 전자 부품, 가변크기, 2024.

작업 설명

픽셀 명멸의 군집은 디스플레이 속 세상을 이룬다. 분명 육안으로 관찰하기 어려운 그 세계 속에서 픽셀들은 춤을 추고 있을 것이다. 〈표시장치 탐구〉은 그간의 탐구 과정 동안 상상한 픽셀의 작동을 그린다.

작업 기록

일상에서 디스플레이에 대한 선택의 폭은 매우 제한적이다. 우리는 디스플레이를 사용하지, 소유하지 않는다.1 사실 지금에 와서 너무나 발전해서 멀어져버린 디스플레이 기술의 족적은 따라가기가 힘들고 굳이 알 필요도 없다. 나는 그런 것이 불만이고 여기서 나의 연구가 시작되었다.

나에게 1픽셀은 어딘가 감동적인 데가 있다. 그런 것은 나의 공상 속에서 피어나는데,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디스플레이2가 어떤 세계라고 상상해보자. 키보드나 마우스 혹은 손가락의 조작을 통해 디스플레이에 표시되는 데이터를 바꿀 때마다 이 미세한 세계 속에서는 우리가 육안으로 관찰할 수 없는 픽셀의 군집이 명멸하며 춤을 출 것이다. 자그마한 하나의 픽셀3이 적게는 921,600개, 많게는 8,294,400개 혹은 그 이상의 픽셀과 무리지어 춤을 추는 모습을 나는 관찰하고 싶었다. 이런 것은 먼젓번에는 1 픽셀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하였고 이번 학기 동안 데이터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장치인 디스플레이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21세기 사람인 내가 20세기의 기술, 음극선관(CRT)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까?

개인이 디스플레이를 만드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

만약 만들 수 있다면 내가 만들고 싶은 디스플레이는 어떤 모습일까?

위와 같은 첫 번의 질문에 좌절되거나 답을 내리지 못한 뒤, 나는 손바닥만한 디스플레이를 작동시키는 일에 몰두했다.
좀 더 작은 크기의 저사양의 디스플레이라면 앞서 관찰한 복잡한 기술보다는 내가 제어할 수 있는 영역이 좀 더 많지 않을까. 그것을 손으로 만지며 피지컬 컴퓨팅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기존의 LCD, OLED 디스플레이 외에 E-Ink 디스플레이, LED 디스플레이 등 다양한 디스플레이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가 일상에서는 그것을 디스플레이라고 생각지 않았던 것, 예를 들어 버스 전광판에 사용되는 LED 패널, 에어컨의 리모컨에 붙어있는 LED 디스플레이, 프린터기에 붙어있는 LCD 디스플레이 등 기능적으로 사용되기 위해 존재하는 자그마한 저해상도 디스플레이가 어느 순간부터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한 번은 내가 지금 만지작 거리는 디스플레이 중 하나가 어릴 적 즐겨 사용했던 아이팟 클래식에 들어간 LCD와 동일한 해상도를 지닌 것에 그것이 최신 사양이던 시절을 추억4하기도 했다. 기술적 난항을 겪는 날이 잦음에도 그런 기억을 생각하면 기꺼이 카페인 음료를 마시며 버틸 수 있었다. 내가 그것을 본연의 목적인 기능적 활용을 벗어나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다는 상상은 나에게 생생함을 제공하였다. 그렇게 각종 디스플레이를 구동시키는 것은 즐거운 일인 한 편, 그것이 형식을 벗어나 내용이 되는 일이 되려면 어찌해야할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깜깜하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아래와 같은 것을 궁금해 한다.

디스플레이를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활용할 수는 없을까?

우리가 그림을 그릴 때 자기의 취향과 목적에 맞는 재료를 골라 사용하는 것처럼, 디스플레이 역시 누군가가 자신의 작업을 송출할 때 그에 걸맞는 디스플레이를 고민할 필요는 없을까?

픽셀들의 상호작용은 정확히 어떻게 이루어질까?

아직 답을 찾지는 못하였다. 다만 저사양 하드웨어를 지닌 디스플레이를 통해 내가 그렸던 픽셀의 움직임을 상상해본다.


  1. 언젠가 어떤 철학자가 얘기하였듯, 이해하지 못한 것은 소유할 수 없다.
  2. 여기서는 주로 LCD나 OLED로 이루어진 고사양 디스플레이를 말한다.
  3. 우리가 보통 디지털 세계에서 최소 단위로 생각하는 픽셀은 사실 하드 웨어 차원에서는 3개의 서브 픽셀로 이루어져있다. 그러니 후술하는 HD 해상도(1280x720)와 4K 해상도(3840x2160)는 사실 적혀있는 숫자보다 3배나 많은 픽셀로 이루어져있는 셈이다.
  4. 고등학교 시절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아이팟 클래식에 담아둔 영화를 감상하는 일은 돌비 서라운드를 지원하는 극장에서 영화를 감상하는 것보다도 깊은 몰입 속에서 이루어진다. 누구나 그런 경험이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