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희.루루

〈불가능한 편지 쓰기〉

아두이노 보드에 푸시 버튼과 피에조 부저, 스피커 유닛 연결, 가변크기, 2024.

작업 설명

어떤 이유로 인해 머릿속에 이미지로 남아 자꾸만 호출되는 기억을 쓰고 말하는 것이 가능할까? 만약 가능하다면 어떤 방법으로 쓰고 말해야 그 기억이 갖는 알 수 없는 느낌을 이야기하는데 성공했다고 느낄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가지고 '기억-이미지'라 이름 붙인 특정한 기억을 이야기할 수 있는 방법을 탐구했다. 그 결과, 음성을 재생할 수 있는 키보드를 제작해 여러 기억-이미지를 관통하는 하나의 문장을 쓰기로 한다. 하지만 문법에 맞는 정확한 문장을 쓰려고 전시장을 가로지를 때마다 문장의 사이에는 구멍이 생기고 여전히 기억-이미지를 이야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가능함의 찰나를 동시에 느낀다.

작업 기록

1.
나는 요즘 나의 기억-이미지를 작업으로 풀어내는 중이며 풀어내려는 기억-이미지 중에는 네가 등장하는 것도 있다. 처음 이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땐 엄마가 가장 먼저 떠올랐는데 왜냐하면 나는 내 작업을 통해 여자에 대해 말하려는 시도를 작년부터 해왔고 엄마는 내가 말하고자 하는 여자에 너무나 부합하는 여자인지라 그 기억-이미지를 제일 먼저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내가 자주 떠올리는 주요한 기억-이미지 중에는 항상 네가 등장하는 기억-이미지가 있었지만 나는 이를 무시하고 나와 엄마에 대한 기억-이미지만을 말하려고 했는데 자꾸만 그 외면은 나를 말없이 빤히 쳐다보았다. 나의 모든 시간에, 낮과 밤 할 것 없이 모든 시간에 외면의 끈질긴 시선은 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고 나는 잠깐씩 그것과 눈을 마주치기는 했지만 그때마다 할 수 있는 건 슬퍼하는 것뿐이었다. 슬픈 여자. 나를 슬픈 여자로 만드는 건 여자뿐이라고 남자로 인해 슬픈 여자가 되는 건 모두가 하품을 하거나 삿대질하는 일인데 그럼에도 나는 이제 외면을 그만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기억-이미지는 슬픈 여자를 위해서 말해져야만 한다. 여전히 사랑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지금 내가 하고자 하는 기억-이미지에 대한, 그리고 그것을 말하고 기록하고자 하는 작업은 (성공 없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며 착신이 불가능한 러브레터를 굳이 쓰고자 하는 나의 몸부림이다.

2.
〈예술가의 리서치〉는 하나의 질문을 적으면서 시작되었다. 질문은 처음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내가 보여주고자 하는, 말하고자 하지만 나도 아직 알 수는 없는 뿌연 안개에 쌓인 작업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계속해서 길어지고 고쳐지면서 명확해진다. 사실 나는 이렇게 명확한 질문을 향해 하나의 질문을 수정해 나가는 수업의 방식에 의문을 가졌었다. 왜냐하면 내 안과 밖에는 물음표가 항상 따라다니기는 하지만 그것들은 내가 지금 당장 답변하기 어려운 무언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유동하는 잠재적 덩어리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그것의 형체가 뚜렷하지 않을수록 물음표는 그 존재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고, 나의 작업 또한 나의 물음표와 동일하게 무엇인지 명확히 알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설명하기 어렵고, 물에 섞이지 못해 표면을 떠다니는 기름 막처럼 불가능함과 성공 없음 속에 머물러야 내 것답다고 생각한 거다. 그런데 질문을 거듭 고쳐 나가며 내가 작업으로 이야기하고자 했던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점점 제자리를 찾아가며 섬세한 형체를 가지는데 나는 그런 진화하는 듯한 무언가를 바라보며 괴롭기도 했지만, 무엇 때문에 내가 괴로운지 알 수 있다는 점에서 기묘한 쾌감을 느꼈다. ‘발설’과 ‘기록’으로부터 시작해 ‘기억-이미지’를 등장시키고, 나는 어떤 기억을 ‘기억-이미지’로 내 머릿속에 남기고 호출하는지 깨달았고, 이것을 어떤 식으로든 이야기하고자 하는 나를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기억-이미지를 녹음했고, 글로 기록했고, 편지를 썼고, 모스부호 송신기를 만들었고, 키보드를 만들었고, 이것을 누르고자 했고, 기억-이미지를 관통하는 하나의 문장을 썼고, 그것을 음성으로 바꾸었고, 쪼갰고, 높낮이를 바꿨고, 다시 하나의 문장, 혹은 단어들이 나와 당신에게 들리게끔 몸부림치고자 했다. 이렇게 한 것들이, 하고자 하는 것들이 이번 학기 나의 마지막 질문인 ‘절대 성공 없는 사랑에 대한 기억-이미지와 그것을 둘러싼 이야기를 말하고 쓰고자 하는 나의 몸부림은 전달이 가능할까?’에 대한 마침표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아직 나는 내가 왜 나의 ‘기억-이미지’를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나에게 ‘기억-이미지’는 정확히 무엇인지 무엇을 내포하고 있는지, 어떤 불가능성과 가능성을 가졌는지, 이 전시에서 보여주는 ‘기억-이미지’ 이야기 방식이 정말 적절한 건지 아직 모르겠기에 또다시 질문을 이어 나가거나 고쳐나가거나 할 텐데, 그래서 〈불가능한 편지 쓰기〉를 관람하는 이들에게 바라는 것은 나의 작업을 어느 소설에 등장하는 찰나의 쉼표로 봐주었으면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