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희.루루
작업 설명
어떤 이유로 인해 머릿속에 이미지로 남아 자꾸만 호출되는 기억을 쓰고 말하는 것이 가능할까? 만약 가능하다면 어떤 방법으로 쓰고 말해야 그 기억이 갖는 알 수 없는 느낌을 이야기하는데 성공했다고 느낄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가지고 '기억-이미지'라 이름 붙인 특정한 기억을 이야기할 수 있는 방법을 탐구했다. 그 결과, 음성을 재생할 수 있는 키보드를 제작해 여러 기억-이미지를 관통하는 하나의 문장을 쓰기로 한다. 하지만 문법에 맞는 정확한 문장을 쓰려고 전시장을 가로지를 때마다 문장의 사이에는 구멍이 생기고 여전히 기억-이미지를 이야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가능함의 찰나를 동시에 느낀다.
작업 기록
1.
나는 요즘 나의 기억-이미지를 작업으로 풀어내는 중이며 풀어내려는 기억-이미지 중에는 네가 등장하는 것도 있다. 처음 이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땐 엄마가 가장 먼저 떠올랐는데 왜냐하면 나는 내 작업을 통해 여자에 대해 말하려는 시도를 작년부터 해왔고 엄마는 내가 말하고자 하는 여자에 너무나 부합하는 여자인지라 그 기억-이미지를 제일 먼저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내가 자주 떠올리는 주요한 기억-이미지 중에는 항상 네가 등장하는 기억-이미지가 있었지만 나는 이를 무시하고 나와 엄마에 대한 기억-이미지만을 말하려고 했는데 자꾸만 그 외면은 나를 말없이 빤히 쳐다보았다. 나의 모든 시간에, 낮과 밤 할 것 없이 모든 시간에 외면의 끈질긴 시선은 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고 나는 잠깐씩 그것과 눈을 마주치기는 했지만 그때마다 할 수 있는 건 슬퍼하는 것뿐이었다. 슬픈 여자. 나를 슬픈 여자로 만드는 건 여자뿐이라고 남자로 인해 슬픈 여자가 되는 건 모두가 하품을 하거나 삿대질하는 일인데 그럼에도 나는 이제 외면을 그만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기억-이미지는 슬픈 여자를 위해서 말해져야만 한다. 여전히 사랑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지금 내가 하고자 하는 기억-이미지에 대한, 그리고 그것을 말하고 기록하고자 하는 작업은 (성공 없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며 착신이 불가능한 러브레터를 굳이 쓰고자 하는 나의 몸부림이다.
2.
〈예술가의 리서치〉는 하나의 질문을 적으면서 시작되었다. 질문은 처음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내가 보여주고자 하는, 말하고자 하지만 나도 아직 알 수는 없는 뿌연 안개에 쌓인 작업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계속해서 길어지고 고쳐지면서 명확해진다. 사실 나는 이렇게 명확한 질문을 향해 하나의 질문을 수정해 나가는 수업의 방식에 의문을 가졌었다. 왜냐하면 내 안과 밖에는 물음표가 항상 따라다니기는 하지만 그것들은 내가 지금 당장 답변하기 어려운 무언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유동하는 잠재적 덩어리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그것의 형체가 뚜렷하지 않을수록 물음표는 그 존재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고, 나의 작업 또한 나의 물음표와 동일하게 무엇인지 명확히 알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설명하기 어렵고, 물에 섞이지 못해 표면을 떠다니는 기름 막처럼 불가능함과 성공 없음 속에 머물러야 내 것답다고 생각한 거다. 그런데 질문을 거듭 고쳐 나가며 내가 작업으로 이야기하고자 했던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점점 제자리를 찾아가며 섬세한 형체를 가지는데 나는 그런 진화하는 듯한 무언가를 바라보며 괴롭기도 했지만, 무엇 때문에 내가 괴로운지 알 수 있다는 점에서 기묘한 쾌감을 느꼈다. ‘발설’과 ‘기록’으로부터 시작해 ‘기억-이미지’를 등장시키고, 나는 어떤 기억을 ‘기억-이미지’로 내 머릿속에 남기고 호출하는지 깨달았고, 이것을 어떤 식으로든 이야기하고자 하는 나를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기억-이미지를 녹음했고, 글로 기록했고, 편지를 썼고, 모스부호 송신기를 만들었고, 키보드를 만들었고, 이것을 누르고자 했고, 기억-이미지를 관통하는 하나의 문장을 썼고, 그것을 음성으로 바꾸었고, 쪼갰고, 높낮이를 바꿨고, 다시 하나의 문장, 혹은 단어들이 나와 당신에게 들리게끔 몸부림치고자 했다. 이렇게 한 것들이, 하고자 하는 것들이 이번 학기 나의 마지막 질문인 ‘절대 성공 없는 사랑에 대한 기억-이미지와 그것을 둘러싼 이야기를 말하고 쓰고자 하는 나의 몸부림은 전달이 가능할까?’에 대한 마침표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아직 나는 내가 왜 나의 ‘기억-이미지’를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나에게 ‘기억-이미지’는 정확히 무엇인지 무엇을 내포하고 있는지, 어떤 불가능성과 가능성을 가졌는지, 이 전시에서 보여주는 ‘기억-이미지’ 이야기 방식이 정말 적절한 건지 아직 모르겠기에 또다시 질문을 이어 나가거나 고쳐나가거나 할 텐데, 그래서 〈불가능한 편지 쓰기〉를 관람하는 이들에게 바라는 것은 나의 작업을 어느 소설에 등장하는 찰나의 쉼표로 봐주었으면 하는 것이다.